유정인 자신의 책상 위에 반듯하게 내려놓는 도시락을 본 순간 열이 확 뻗쳐 커다란 눈을 굴리며 고개를 쳐들었다.'“가져가! 당장 가져가!”'자신의 물건을 만지지 말라고 분명히 그렇게 수없이 말했지만 윤태민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유정이의 도시락을 또다시 챙겨와 코앞에 들이대고 있었다. 유정인 태민의 행동에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아 씩씩거렸지만 늘 그렇듯 태민은 커다란 등짝을 보이며 교실 문밖을 나서고 있었다.'“야! 윤태민! 가져가란 말이야. 내 말 안 들려? 네 손끝이 내 물건에 닿는 건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지? 내 말 안 들려? 당장 가지고 가라고!”'일찍부터 등교를 한 친구들이 반 이상 가득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는 유정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자신의 도시락을 집어 들곤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런 유정의 행동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지 아이들은 그저 혀를 차며 고갤 돌려버렸다.'유정인 이미 사라져버린 태민일 노려보듯 교실 밖을 노려보며 성난 몸을 부르르 떨었다.'“멍청한 자식!”'“그건 아니지. 멍청하면 어떻게 학생회장을 맡고 있겠냐?”'“입 다물어!”'유정인 친구 미영이가 다가오며 어깨를 감싸 안자 쌀쌀맞게 쏘아붙였지만 서로의 그런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오랜 우정 덕에 미영인 피식 웃었다.'“야, 집어 던진 도시락이 몇 개냐! 난 널 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네 물건 만지는 게 싫으면 네가 직접 가지고 오던지 왜 아침마다 이 난리야?”'“내가 집을 나서기도 전에 이미 가져가 버리는 걸 어쩌라고!”“참 지극 정성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네 말대로 멍청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나쁜 자식!”'씩씩거리고 서 있는 유정이완 반대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미영인 바닥에 뒹굴고 있는 도시락을 집어 들며 킥킥거렸다.'“우리 학교 회장에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유일할 거다.”'“학생회장이 뭐? 그게 그렇게 잘났어? 그래봐야 우리 집 머슴인 주제에.”'유정인 한껏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유정의 그런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유독 태민에게 거칠게 구는 유정의 행동은 도가 지나칠 때가 많아 친구인 미영이도 가끔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하지만 나서서 말려봐야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기에 그저 모른 척할 뿐이었지만 그런 유정일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반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는 자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사실이었다.'“유정아, 네 말대로 네 집 머슴인데 그깟 것 좀 시키면 어때? 그냥 둬.”'“날 가지고 감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어떻게든 놀려 먹고 싶어서 별짓거리를 다하고 있는 거라니까! 그걸 알면서 그냥 두라고?”'그녀 자신이 그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유정인 미영이가 내민 도시락을 무슨 징그러운 물건 바라보듯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네가 가지고 있어.”'“또 가져다 내동댕이치게? 질릴 때도 되지 않았냐?”'“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건데, 모른 척하면 바보지.”'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무섭게 달려 나가 3학년 교실로 쳐들어갈 게 뻔했고, 다녀와도 성이 풀리지 않아 더욱 씩씩거릴 유정이란 것 또한 뻔한 일이었기에 미영인 고개를 저었다.'“이미 우리 학교 학생들은 윤태민이 강유정 머슴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선생님들까지도 다 알 정도니까 말이야.”'“그래서?”“뭐, 별말은 아니고 머슴 살살 다루라고, 그렇게 심통만 부리다가 정말 필요할 땐 써먹지도 못하니까 말이야.”'“무슨 소리야?”'“너 오늘 서류 가지고 왔냐?”'“서류?”“오늘까지 꼭 가져오라고 담탱이가 신신당부한 것 같은데 말이야.”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유정인 커다란 두 눈을 더욱 크게 굴리며 잊고 있었다는 말만을 중얼거렸다.'“그것 봐. 네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고 분명히 말했지?”'미영인 인상을 찌푸리며 서 있는 유정에게 슬며시 힌트를 내보이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지금, 나보러 윤태민에게 부탁하란 소리야?”“부탁은 무슨, 머슴에게 부탁하는 주인도 있냐?”'미영인 일방적으로 쏘아대는 유정일 막아보자는 생각으로 내뱉었지만 어쩌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톱을 물어뜯고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유정일 바라보았다.'“싫음 말고, 그냥 담임한테 한소리 듣고 내일 가져오면 되지 뭐.”'그 자존심에 절대로 가만히 듣고 있을 유정이가 아니었으니 아마 당장이라도 가져와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미영인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안 가져온 애들이 너 하나겠어?”'“그렇지 않아도 덜렁이라고 잔소리하는 소리 듣기 싫어 죽겠는데, 아이 씨.”'단순하게도 이미 도시락 사건은 잊었는지 유정인 햇빛 가득 들어오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감정 기복이 무척 심한 유정인 열일곱이 분명함에도 이제 일곱 살 아이처럼 떼쓰고 억지 부리고 여전히 사리 판단력이 흐린 듯했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만은 죽어도 싫어하는 성격답게 고민에 휩싸인 모양이었다.'‘으이고, 그렇게 싫으면 차라리 집으로 전화 한 통 걸어서 기사 아저씨께 가져다 달라면 되지. 뭘 저렇게 고민할까? 하여간 단순한 강유정 네 덕에 난, 하루도 심심할 날이 없다!’'긴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젓던 유정인 이어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어이없어 미영인 유정이 모르게 웃고 말았지만 아이 같은 유정이의 모습이 그리 싫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유정이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