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녀는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손에 든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틀린그림찾기 게임을 하는 중이다. '제한된 시간이 다 되어 화면에 빨간 경고창이 깜박이기 시작하자 윤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리기 전에 마저 찾아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지자 더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때 갑자기 끝이 뾰족한 회색 막대기가 나타나 그녀의 휴대전화 액정 위를 콕하고 찍었다. 화면에 다 찾았다는 동그라미가 그려지면서 성공했다는 SUCCESS 문구가 떴다. 나타났다 사라진 것은 그녀와 똑같이 생긴 터치펜이었다. 고개를 들자 그녀를 보며 살짝 미소 짓는 남자가 보였다. 놀라서 커진 눈을 보며 남자의 눈이 더 진한 웃음을 지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하는데 남자가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대고는 앞으로 밀기 시작했다.'“어, 어.”'“내려야죠?”'“네? 아, 네.”'문이 닫히기 직전 윤희는 지하철에서 겨우 내렸다. 멍하게 넋 놓고 있었다면 내리지도 못했을 뻔했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하철 안에서 남자가 닫힌 문 넘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하철이 터널을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자 윤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몸을 돌려 승강장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조금 전 상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그 남자를 보기 시작한 지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마다 같은 승강장 위치에 서 있는 남자. 그녀가 환승하기에 제일 좋은 자리. 미지의 남자에게 붙여준 닉네임은 5-5. 매일 같은 자리에서 보는 걸 보니 남자도 환승을 하는 것일까 싶었지만 늘 앞쪽에 서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남자는 바로 이 역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처음 그를 보았을 때, 딱 벌어진 어깨선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얼추 보아도 키가 180은 훌쩍 넘어 보였다. 처음 며칠은 그를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깔끔하게 차려 입은 양복에 서류 가방을 든 모습이 다른 직장인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루는 바로 옆에 서서 간 적이 있었는데 은은하게 풍겨오는 로션 향이 시원한 바다를 떠오르게 했다. 그 향이 온종일 그녀의 코끝을 떠나지 않았었다. 아침마다 그 남자를 눈으로 찾게 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다.''“윤희야! 윤희야!” '영어 고급반 수업을 같이 듣는 지혜가 그녀의 팔을 툭하고 잡았다.'“뭘 그리 생각해? 불러도 대답도 없고?”'“아! 미안. 못 들었어.”'“출구에서 나오는 거 보자마자 불렀는데……. 고민거리라도 생겼어? 땅바닥 보며 그렇게 걷다가 어디 부딪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아…….”'윤희는 멋쩍은 듯 웃었다.'“그나저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좀 그렇다. 그래도 둘둘 감고 왔네?”'“응. 겨울엔 따뜻한 게 최고야! 너처럼 멋 부리다간 얼어 죽지.”'지혜는 늘 멋스럽게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친구였다. 고급반 수업 첫날 그녀에게 살갑게 먼저 말을 걸어준 동갑내기 친구였다. 지혜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짧은 치마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어그부츠를 신고 녹색 반코트를 입고 왔다. '학원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따뜻한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아! 따뜻해.”'“오늘은 내가 살게. 지난번에 네가 샀잖아.”'지혜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카페라떼 2잔을 주문했다.'“평상시와 같이 시럽은 빼 드릴까요?”'“네.”'카운터에 있는 남자 직원은 그녀들이 시럽을 넣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재차 확인했다. 늘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기 전에 이곳에 들러 카페라떼를 주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혜가 윤희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왜?”'“오늘 아침에도 그 남자 봤어? 5-5?”'“아! 응. 봤어. 근데 말이야 오늘은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이상한 일? 무슨 일? 뭐, 쪽지 같은 거 받았어?”'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재촉하는 지혜의 표정에 윤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엉뚱하긴. 근데, 나보다 네가 그 남자를 더 기다리는 것 같다?”'“어머? 얘는. 아니야.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지금이 몇 번째니? 아니지. 2주가 넘은 거 같은데? 그렇게 보는 것도 굉장히 힘든데.”'“주문하신 카페라떼 두 잔 나왔습니다.”'커피를 받아 지혜에게 한 잔 건네주며 윤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자. 수업 끝나고 말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