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승효라고 합니다.”'승효의 인사에 소개팅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지연이라고 해요.”'생긋 웃는 얼굴이 요즘 최고 인기인 소녀걸스의 멤버를 닮아 풋풋하기 그지없다. 나이는 스물네 살이라는데, 대학 신입생 뺨치게 앳된 인상이었다.'승효는 속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선배가 이번에는 진짜 틀림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진짜로 앙큼상큼 파릇파릇한 귀염둥이가 나온 것이 아닌가. 고마운 선배에게 약속대로 술, 그것도 비싼 양주를 쏴야겠다고 다짐하는 승효였다.'“아직 식사하기엔 좀 이른데, 우선 커피나 한 잔 할래요?”'“네, 그래요.”'소개팅녀는 순순히 따랐다. 승효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심정이었다.'한승효 하면 이래봬도 대학 시절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킹카다. 그러나 눈도 그만큼 높은 탓에 좀처럼 연애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연애를 했던 것이, 옛날 옛적 군대 시절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 헤어진 여자친구. 그 후로 아직까지 솔로의 길을 걷고 있는 그였다. 주위에서 소개팅을 해 주다, 해 주다 지쳐서 제발 눈 좀 낮추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승효는 끄떡조차 하지 않았다. 소녀걸스처럼 어리고 귀엽고 상큼한 여자친구가 아니면 차라리 평생 솔로의 한 길을 걷겠다! 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커피 잔에 담긴 티스푼을 휘저으며 소개팅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승효 씨는 졸업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1년 정도 됐어요.”'“그럼, 하시는 일은요?”'“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으려고 준비 중이에요.”'소개팅녀의 눈이 반짝였다.'“어머, 그럼 정말로 무비박스 그룹이……?”'“하하, 선배가 그런 얘기까지 하던가요? 쑥스럽게.”'승효는 짐짓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그러나 사실 그 얘기는 절대 빠뜨리지 말라고 선배에게 신신당부를 했던 건 승효다. 스물여덟이나 된 남자가 직업이 없다면, 이 정도 핑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너무 멋있어요.”'두 손을 꼬옥 모아 쥐고 그렇게 말하는 소개팅녀의 표정은 동경과 호감에 가득 차 있었다.'승효 역시 희망에 부풀었다.'좋아, 이번에야말로 연애를 하는 거다. 그러다 잘되면 결혼까지도.'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비슷한 집안의 아가씨들과 선봐서 결혼하는 건 딱 질색이었다. 아직은 스물여덟 살, 가끔 선자리가 있으니 나가 보라는 말씀은 하셔도 결혼하라는 압박까지는 별로 없었다. 이럴 때 선수를 쳐서 연애결혼을 하고 말리라고 다짐하는 승효였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조건 맞춰 결혼해서 평생 정 없이 살고 싶진 않았다.'“저는요, 빨리 시집가서 귀여운 아이랑 사랑하는 남편이랑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에요.”'예쁜 것이 말도 어쩜 그렇게 맘에 쏙 들게 하는지. 승효는 시종일관 벌어지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