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갑작스런 소음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소음의 주인공인 까만 자동차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까만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꽃집을 노려보다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려는 순간 꽃집을 나서며 손님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는 백하의 모습에 힘 빠진 손이 손잡이를 놓쳐버렸다.'‘그 계집의 농간이었던 거였어.’'처음부터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행복했던 자신의 가정을 부셔버리고 가족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많이 사랑해.’'자신들의 만남이 추운 한겨울에 시작해 이제 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했고 무수한 밤을 보내기도 했는데, 함께 느꼈을 거라 믿었던 행복은 자신만 느끼고 그녀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을 속삭일 때도 그녀는 겉으로만 사랑을 속삭일 뿐 속으론 자신을 비웃고 또 비웃었을 것이다.'‘많은 거 바라지 않아. 그냥, 당신만 있으면…… 돼.’'힘없이 떨어뜨려 놓았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잠시 부드러워졌던 두 눈 역시 날카롭게 변했다. 용서 못 한다. 자신의 사랑을 이용한 그녀를 용서 안 할 생각이다.'‘……당신이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어.’'입가에 한가득 미소를 걸고 화분에 물을 뿌리며 주변 가게주인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눈을 감은 혁의 얼굴이 찡그려졌다.'“…….”''[지금 집이야.]'문자 알림 소리에 백하의 입가에 또 미소가 지어졌다. 앞치마를 풀어 헤치고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와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백하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집에 들어가.”'혁의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얼굴에 입가에 맴돌던 미소도 다음말도 삼킨 채 걸음을 멈추었다. 들려오는 혁의 목소리에 돌아서서 흔들리는 눈으로 바닥만 바라보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는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복수하려고 일부러 접근한 거야?”'“…….”'“묻잖아. 복수하려고 접근한 거야?”'“…….”'어서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입이 떨어 질 생각을 않자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톡하고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좋았어? 너한테 푹 빠져 있는 날 얼마나 비웃었을까.”'“……내 말…….”'“무섭다. 송백하란 여자 정말 무서운 여자였네.”'“……내 말도…….”'“소름끼친다. 정말, 너란 여잘 왜 사랑했을까.”'“…….”'“이런 상황에서도 널 보면서 뛰는 내 심장을 찢어버리고 싶어 미치겠다.”'“……미안해.”'“겨우, 내뱉은 한마디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긴 하는 거야?”'등을 돌린 채 서있는 모습에 소리를 질러 보지만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성큼성큼 걸어가 돌려세워 어깨를 힘껏 움켜잡았다. 조그마하게 들려오는 아픔을 느끼는 소리에 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자신의 앞에 서있는 백하를 바라보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린 혁이다.'“단 한순간도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건…….”'“…….”'“날 사랑하긴 했어? 그것만 말해.”'“…….”'뭐라 말해야 그가 자신을 믿어줄지……. 그에게 붙잡힌 어깨의 통증보다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이렇게 미친 듯 뛰는 심장의 울림을 어떻게 전해야 그에게 자신의 진심이 전해질지를 모르겠어서 망설이자 울먹이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술을 질끈 깨물어버렸다.'“사랑하긴 했냐고 묻잖아.”'“…….”'“그냥, 오로지 복수가 목적이었던 거야?”'“…….”'“좋겠다. 반쯤은 성공한 복수니까.”'“…….”'“…….”'힘없이 떨어진 혁의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자신을 스쳐 지나가려는 혁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자신 때문에 상처를 받은 혁을 붙잡는다면 아마 그가 더욱 많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을 쥐며 멀어져 가고 있는 혁의 모습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다 울음을 터트리고 만 백하였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다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칫하다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혁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어.’'“흐…… 젠장…….”'한편으론 그녀가 이해가 됐다. 행복했던 한 가정을 부셔놓고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신의 어머닌 살아오셨으니까……. 그리고 자신 역시도 어머닐 아직도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원망을 지우려 했었는데 오히려 그 원망을 더 품게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