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새롭게 태어나는 봄이었다. 이제 막 중학생 티를 벗어나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는 초희는 오늘 있을 입학식에 어떻게든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해 꽃단장을 했다. 교문을 들어서던 초희는 실내화를 사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 것을 생각하고 뒤로 돌아 문구점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어! 조심해!”'문구점 앞에서 남자와 정면충돌해 그 반동으로 바닥으로 넘어지려는 아찔한 순간 초희는 어느새 남자의 든든한 팔에 안겨 있었다. 코끝에서 전해지는, 코끝을 간질이는 듯 스치고 지나가는 남자의 향기는…… 바람이었다. 계절마다 그 향이 달라지는 바람처럼 어쩌면 이 남자도 그런 향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초희…… 김초희……?”'남자의 향기에 취해 있던 초희는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른이라기보다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 남자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어? 제 이름 어떻게 아셨어요?”'“아, 교복에 내 이름은 김초희입니다, 하고 새겨져 있는 걸?”'초희는 손을 들어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가렸다.'“네, 맞아요. 이번에 1학년이 되는…… 김초희예요. 그리고…… 숙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겨우 160센티가 될까 한 작은 키의 꼬마 숙녀 김초희는 180센티가 넘는 남자를 올려다보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야 했다. 그런 초희의 모습에 남자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신을 숙녀라 말하는 당찬 소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하하하, 숙녀라…… 한데 뭔가를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아무튼 죄송합니다.”''입학하고 첫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남자를 보고 초희는 헉 하고 놀란 신음을 내뱉었다. 아침에 만났던 남자였다. 하지만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 같은 그의 외모를 보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흠흠…… 난, 국어를 맡은 김기석이다. 올해 나이 스물넷으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이 학교로 왔고, 너희가 내 첫 제자다. 만나서 반갑다. 그럼 내 소개는 끝났으니까…… 수업 시작할까?”'“우우우- 너무해요! 첫 수업인데…….”'“그래도 어쩔 수 없어. 진도는…….”'“에잇! 너희들 조용히 해!”'반 아이들의 야유 소리에 묻혀 책을 펼쳐들고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였다. 갑자기 넋 놓고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던 초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직까지 야유를 하는 반 아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갑작스런 초희의 행동에 놀란 아이들의 야유 소리가 멈추었다. 조용해지자 선생님도 초희를 바라보았다.'“왜? 초희야?”'선생님이 초희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아이들은 놀라워하며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초희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말에 야유는 짧게 끝났다.'“내가……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선포하노라. 지금 이 순간부터…… 김기석 선생님께 눈독을 들이는 자는……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다! 선생님도 기억하십시오! 오늘 이후부터 선생님에게 작업 들어가는 모든 학생들은 제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함부로 웃어 주지 마세요!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