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의 딸 2
지은이 | 만년설
펴낸곳 | 신드롬
정 가 | 3000원
ISBN | 9791171359462
투고처 | syndromeboo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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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목차
5. 유정훈
6. 반란
7. 과거
8. 현생
5. 유정훈
장군 귀신의 명복을 빌어준 후 홍아는 점점 더 신령님이 보고 싶어졌다. 어둠 속에서 몰래 엿보기만 하다 신령님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나니 더 그런 욕심이 생겼다.
‘귀신 걸린 사람이라도 찾아 나서야 하나?’
홍아는 마당을 쓸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신령님은 자신이 위험에 빠져야만 나타나니 스스로 위험에 빠지지 않는 한 신령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니 스스로 귀신이라도 찾아 나서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신령님을 만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는 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잖은 차림의 젊은 선비 하나가 홍아의 집을 찾아왔다.
“이보시오. 여기가 최가의 집이 맞소?”
마당으로 들어서며 묻는 선비의 옷차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잖은 명문가의 분위기가 흘렀다.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이에게 대하는 태도와 말투 또한 예의가 바르고 부드러웠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홍아는 빗질을 멈추고 선비에게 물었다.
“이곳에 홍아라는 처자가 있습니까?”
선비는 홍아에게 아주 정중히 물었다. 홍아는 자신의 존재를 묻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옷차림이 고급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깨끗한 얼굴 생김새에서도 그가 유서 깊은 양반가의 자제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선비가 왜 나를 찾는 거지?’
홍아는 의아한 마음을 품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혹시 처자께서 최홍아입니까?”
“네, 그런데요.”
젊은 선비는 홍아의 말에 반색하며 물었다. 그리고 홍아의 답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유정훈이라고 합니다. 홍아라는 처자가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이리 찾아왔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청을 하려고 이리 왔으니 제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집안 사정이라니 무슨 일인데요?”
홍아는 선비의 말에 솔깃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만약 귀신을 쫓는 일이라면 신령님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제 동생에게 병이 생겼는데 백약을 써도 무효합니다. 나날이 동생의 증세가 심해지니 집안 어른들이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동생분이 아프시다고요?”
홍아의 말에 선비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하다는 의원들을 모두 불러 치료를 해보았지만, 동생 유기훈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더 쇠약해져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의 노복 중 하나가 넌지시 홍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귀신을 보고 들으며 아픈 이의 앞날을 알아본다는 신묘한 처자가 있다는 것을.
소문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나 정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으로 홍아를 찾아온 것이다.
선비의 사정을 들은 홍아는 고민도 하지 않고 정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바로 답을 했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당연히 도와 드리고 말고요.”
“정말 감사하오.”
정훈은 기쁜 마음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날 홍아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후 유정훈의 집으로 향했다.
유정훈의 집은 도성에서도 권세가 드높다는 양반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훈을 따라 솟을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떡하고 버티고 있었다. 정훈의 가문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양반가로 정훈 또한 임금의 측근에서 명을 받아 전달하는 동부승지라는 관직을 제수받았다. 다만 지금은 동생의 병 때문에 잠시 휴가를 얻어 집안일을 돌보는 중이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도 지병으로 병치레를 하는 지금 집안의 기둥은 정훈이었다. 그가 아픈 동생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정훈은 홍아를 데리고 동생이 머무는 별채로 향했다.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 후원 뒤쪽에 기훈이 머무는 별채가 있었다. 홍아는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집안의 기운을 살폈다. 정원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기와집들은 정갈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집안 곳곳 어지럽고 더러운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집안 기운은 평온하고 깨끗한데 어찌 병세가 심한 병자가 생긴 걸까?’
홍아는 정훈의 뒤를 쫓아가며 의심을 품었다.
별채에 도착하자 정훈은 기훈이 누워있는 방으로 홍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기훈은 병세가 완연해 보였다. 피골이 상접한 몸에 낯빛은 먹구름처럼 어두웠으며 숨소리 또한 가늘고 연약하여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홍아는 기훈의 곁에 앉아 그의 기운을 살폈다. 그런데 그의 주변에는 병마의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산 사람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지?”
홍아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왜 그러십니까?”
“그게….”
홍아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정훈이 되물었다.
“무엇이 이상한지 말을 해주십시오.”
“동생분은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네?”
홍아가 주저하며 한 말을 듣고 정훈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리 쇠약해진 동생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니 홍아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이렇게 동생이 죽어가는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니 말도 안 됩니다.”
“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동생분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정기를 잃은 것입니다.”
“정기를 잃다니요?”
“혹여 동생분이 아프기 전에 이상한 일을 겪지 않았습니까?”
홍아의 물음에 정훈은 조용히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이렇게 되기 전 동생은 과거 준비를 위해 절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니 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절이요? 그곳이 어디입니까?”
“불암산 중턱에 있는 절입니다.”
“그럼 그곳에 가서 서둘러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동생분의 정기를 누가 빼앗아 갔는지.”
홍아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정훈에게 말했다. 그녀의 어투가 자못 진지했기에 정훈은 병이 아니라는 홍아의 말에 의심을 품을 수 없었다.
“제게 선비님의 옷을 잠시 빌려주시겠습니까?”
“제옷을요?”
“네. 동생분처럼 공부하러 온 선비로 위장을 하고 암자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정훈은 홍아가 위험을 자청하자 자신도 가겠다며 나섰다.
“안됩니다. 둘이서 가면 그 사악한 존재들이 위협을 느끼고 다가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혼자 가야 경계를 하지 않고 다가올 것입니다.”
홍아의 말에 정훈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탁 때문에 홍아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가 위험해지니 어찌 혼자 보낼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위험에 빠지면 저를 구해주는 분이 있으시니까요.”
홍아는 방긋 웃으며 정훈을 안심시켰다.
기훈의 몸이 점점 말라가며 쇠약해져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를 상황이었기에 홍아는 바로 정훈의 옷을 빌려 입고 암자로 향했다. 한양 북쪽에 있는 불암산까지는 정훈과 함께 말을 타고 갔지만, 그 이후로는 홍아 혼자 산을 타야 했다.
“도련님께서는 이 근처 마을에 머물며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만약 닷새가 지나도 제가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암자로 찾아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정훈은 홍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론 침착한 모습으로 답을 하였지만 사실 정훈은 속으로 홍아의 말과 행동이 새삼 놀라웠다. 위험한 일을 하러 홀로 떠나는 어린 처자의 태도가 너무 의연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부탁을 청했음에도 홍아는 기꺼이 들어주었고 손수 발 벗고 위험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용기 있는 마음에 정훈은 감동하여 오랫동안 홍아가 산길을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홀로 산을 오르며 홍아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산이 높고 깊은 편은 아니나 길이 험했다. 큰 돌과 바위가 곳곳에 있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치기 쉬웠다. 길이 험해서 그런지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없었다.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고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을 가리니 길은 어둡고 음산했다.
불안한 기분에 마음을 다독이며 홍아는 천천히 산길을 따라 절로 향했다. 한 시진 정도 산길을 올라가니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 앞에 당도한 그녀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천왕문을 지나 절 안으로 들어섰다. 금당에 다다르니 한 스님이 홍아를 발견하고 다가와 공손하게 물었다.
“선비님께서는 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
“속세를 벗어나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는데 잠시 여기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이곳에 머무는 사례는 하겠습니다.”
홍아는 스님의 물음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주지 스님께 허락을 구하고 머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스님의 말에 홍아는 금당 안에서 기도를 하는 주지 스님을 만나 절에 머물게 해달라는 청을 했다. 주지 스님은 흔쾌히 홍아의 청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절에 있는 승방에 머물게 되었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중 가장 바깥쪽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방에 짐을 푼 홍아는 그날부터 과거를 준비하는 서생처럼 항상 서안 앞에 앉아 글을 읽었다.
가끔 스님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삼 일째 날이 되었다. 홍아는 글을 읽다 무료한 것처럼 하품하고는 승방을 나섰다. 한 손에 서책을 들고 천천히 절 안을 거닐다 대웅전에서 기도하고 나오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벚꽃처럼 흰 피부에 버들가지처럼 연약한 몸매를 가진 여인은 선비로 변장한 홍아를 보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홍아는 여인의 유혹에 선비처럼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젊은 선비가 자신의 시선을 외면하자 그 여인은 호호하며 웃고는 이내 홍아를 지나 절을 나섰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늦은 오후 홍아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서책을 들고 절을 배회했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제 본 여인이 다가와 홍아에게 말을 걸었다.
“선비님은 과거를 준비하시는 서생인가요?”
“그렇소만.”
홍아는 짐짓 목소리를 굵게 변조하여 대답했다.
“매일 공부에 여념이 없으시니 고단하시겠어요. 저와 오늘 밤 술 한 잔을 하시면서 무료함을 달래보시지 않겠습니까?”
여인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운 듯 몸을 꼬며 말했다.
뭇 사내들이라면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고도 남을 모습이었다. 선비로 변장을 한 홍아도 여인의 장단에 맞추어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어찌 남녀가 유별한데 같이 술을 마시겠소.”
넌지시 여인의 유혹을 물리치니 여인이 가까이 다가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찌 저를 외면하시렵니까? 어제 선비님을 처음 마주한 후 밤새 그 모습이 아른거려 한시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가련한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생각하시고 저와 함께하세요.”
여인의 권유에 마지못해 승낙하듯 홍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산속에 어둠이 내리고 구름이 달을 가린 시각, 그 여인이 술상을 들고 홍아의 방으로 찾아왔다.
홍아는 여인과 마주 앉아 그녀가 가지고 온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인이 따라준 술잔을 들어 마시는 척하긴 했지만 실은 술은 입에 머금은 후 기침을 하는 척하며 슬쩍 옷소매 안으로 뱉었다. 그리고 거짓으로 술에 취한 척 곯아떨어졌다.
홍아가 콧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지자 여인은 술상을 밀어내고 홍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살며시 입을 맞추려 했다. 여인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오자 홍아는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정기를 빨아먹는 요괴군.’
홍아는 여인의 정체가 사람이 아님을 깨닫고는 허리춤에 달아 놓은 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 사정없이 여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아픈 옆구리를 움켜쥔 여인의 치맛단 아래 하얀 여우 꼬리가 드러났다. 여인의 정체는 여우 요괴였다.
“네가 젊은 선비들을 꼬드겨 정기를 뽑아 먹었느냐?”
“체, 낯선 여인이 유혹한다고 덥석 방에 들인 그놈이 어리석은 것이지.”
여우 요괴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앙칼진 어투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 바늘 하나로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
여우 요괴가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고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왔다. 홍아는 더이상 요괴를 혼자 상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방을 뛰쳐나왔다. 홍아가 밖으로 나와 도망을 치자 여인 복장을 한 여우 요괴가 재빠르게 뒤쫓아왔다. 그리고 여우 울음소리를 내 동료들을 불렀다.
잠시 후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하나둘 나타나 홍아의 앞길을 막았다. 그들은 모두 스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엉덩이에는 털이 풍성한 꼬리를 달고 있었다. 홍아를 처음 맞아준 스님부터 주지 스님까지 모두 여우 요괴였다. 불암산은 평범한 절이 아니라 여우 요괴 소굴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기도하러 오는 이들 혹은 공부를 하러 온 서생들은 대부분 여우 요괴의 꼬임에 넘어가 정기를 빼앗기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유정훈의 동생도 이 절로 공부를 하러 와 여우 요괴의 꼬임에 넘어가 정기를 빼앗기고 만 것이다.
여우 요괴들이 몰려와 홍아 주위를 감싸니 홍아는 도망칠 길이 없었다. 덫에 갇힌 꼴이 되자 여인의 모습을 한 여우 요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으며 외쳤다.
“어리석은 서생이여. 도망칠 길은 없소. 그러니 순순히 정기를 내놓는 것이 좋을 것이오.”
스님 요괴들이 홍아에게 다가와 양팔을 잡았다. 요괴에게 붙잡힌 홍아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여인으로 변장한 여우 요괴가 홍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정기를 빨아들이려 했다. 그때 홍아는 요괴의 뒤로 섬광이 스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빛이 어둠을 가르는 순간 여우 요괴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고는 풀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홍아를 붙잡고 있던 요괴들도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 바빴다. 하지만 어둠을 가르는 빛의 섬광이 더 빨랐다. 스님 복을 입은 요괴들도 번쩍이는 칼날에 목이 베였다.
순식간에 요괴들을 처치한 이는 신령님이었다.
구름에 가렸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자 번쩍이는 칼을 들고 있는 신령님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긴 머리와 검푸른 눈빛을 한 신령님은 홍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다친 곳은 없어?”
신령님의 물음에 홍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홍아의 대답을 듣고 난 신령님은 홍아 앞에 쓰러진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의 복장을 한 여우 요괴는 이미 본 모습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꼬리 아홉 개가 달린 구미호의 모습이었다.
신령님은 쓰러진 구미호 옆에 앉아 신력으로 구미호가 삼킨 인간의 정기를 끄집어냈다. 인간의 정기는 반짝이는 구슬 모양이었다. 신령님이 구슬을 홍아에게 내밀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