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의 딸 1
지은이 | 만년설
펴낸곳 | 신드롬
정 가 | 3000원
ISBN | 9791171359455
투고처 | syndromeboo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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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목차
1. 청룡의 탄생
2. 지하세계
3. 혼인
4. 신령님
1. 청룡의 탄생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 아래, 옥황상제의 딸 반하가 머무는 전각 천운각이 있었다. 천운각은 기둥마다 구름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에는 황금빛 기와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천운각 마당 정원에는 몇천 년의 세월 동안 존재했던 커다란 생명수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뒤편 후원에는 호수처럼 넓은 연못 천연정이 있었다.
천운각은 여러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되어 있어 어느 곳에서나 향긋한 꽃향기가 났다. 천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상제의 딸이 머무는 고귀한 곳이니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전각이었다. 그래서 천상에 처음 온 신선들은 천운각에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이 살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그 신비스러운 곳의 주인은 신선들의 생각처럼 얌전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천운각 곳곳에서는 선녀들이 자신이 모시는 주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누군가를 찾는 외침이 들려왔다.
“반하님!”
“반하님! 어디 계세요?”
반하의 시중을 드는 선녀들이 천운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주인을 찾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거람?”
반하를 부르다 지친 선녀들은 저도 모르게 불평을 쏟아냈다. 전각 구석구석을 뒤지던 선녀들은 혹시 반하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며 커다란 꽃병 뒤를 살펴보다 와장창 귀한 도자기를 깨기도 했다.
보물을 깬 선녀들이 전각 안을 우왕좌왕하는 사이 반하는 천운각에서 멀리 떨어진 구름 위에서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동쪽 바다는 아주 짙고 푸르렀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온 사방은 고요했다.
바람 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 일렁이던 파도의 흐름을 깨고 거친 물살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어떤 굉장한 힘이 바닷속에서 하늘로 뻗어 오르며 강하게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그 강렬한 힘에 주변의 파도는 해일처럼 사방으로 거칠게 퍼져 나갔다. 물속에 있던 어떤 생물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드디어 깨어난 것인가?”
구름 위에서 반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줄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거센 물방울들이 얼굴을 때리고 바람이 불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 천년 만에 깨어나는 청룡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거센 바람과 물보라에 몸이 흔들리면서도 반하는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상의 공주, 옥황상제의 유일한 딸이지만 반하는 얌전한 소녀가 아니었다. 반찬 투정을 부리고 온갖 말썽을 부리던 천상의 골칫덩이였다. 그랬던 소녀가 이제 곧 성년식을 앞두고 있었다.
성년을 앞두고 있지만, 천상계를 휘젓고 다니던 반하의 호기심은 여전했다.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 의구심을 풀어야 했다.
며칠 전 반하는 호기심에 일월전에 몰래 들어가 상제가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엿들었다. 일월전은 상제가 선관들과 함께 지상과 천상의 일을 논의하는 장소다.
천상의 모든 선관들이 모이는 장소이니만큼 일월전의 규모는 천상에서 가장 크고 넓었다.
반하가 몰래 숨어들어 간 날, 조례에서는 지상을 돌보기 위한 여러 가지 사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그중 동해의 용왕이 보낸 서신이 화제가 되었다.
백룡이 수명을 다하고 영면에 들었으니 새로 깨어나는 청룡에게 지하세계와 지상의 경계를 맡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이 의견에 신하들은 뜻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새로 깨어난 청룡은 경험이 짧으니 그런 중차대한 일을 맡길 수 없다는 쪽과 지금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동해 용왕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쪽이었다.
두 의견 중 어떤 쪽이 채택되었는지 반하는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동해에서 청룡이 새로 깨어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일월전에서 상제와 신하들이 의논하는 사이 반하는 바로 동해로 향했다.
구름 위에서 동해를 주유하며 청룡이 깨어난다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먼 곳에서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용오름을 목격했다.
오랜 세월 신력을 쌓아 용이 되어 승천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반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물기둥을 뚫고 하늘로 오른 용은 거칠게 몸을 비틀이며 날아올랐다. 머리에 우뚝 솟은 두 개의 뿔과 목 주위를 둘러싼 거친 갈기가 청룡의 모습을 더 두렵게 만들어 보였다.
“저것이 청룡인가?”
구름 위에서 용의 승천을 바라보며 얼이 빠져 있던 반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얼떨떨한 상태로 멍하니 청룡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때 멀찍이 있던 청룡이 등줄기 위로 난 갈기를 휘날리며 반하를 향해 날아왔다.
부리부리한 눈이 반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넌 무엇이지?”
크고 거친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반하. 옥황상제의 딸이다.”
청룡이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마주한 이는 바로 반하였다. 용은 한동안 반하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서로를 탐색하며 상대를 바라보는 사이 사방이 고요했다. 하늘과 바다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잠시 후 청룡이 먼저 몸을 돌렸다. 아쉬워할 사이도 없이 청룡은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용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순간 물보라가 높이 튀고 파도가 출렁였다.
“에잇, 가버렸네.”
반하는 아쉬운 마음에 미간을 찡그렸다.
청룡이 사라진 바다는 다시 고요해졌다. 언제 물보라가 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해진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파도 위에서 빤짝이는 윤슬을 뒤로하고 반하는 다시 천상으로 향했다.
반하가 천운각으로 돌아오자 시중을 드는 어린 선녀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선녀장만은 미간에 힘을 주고 무서운 얼굴로 반하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상제의 명으로 아직 근신 중인 것을 잊으셨습니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선녀장의 모습에 반하는 흠칫 마음이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그야, 선녀장이 상제께 말하지 않으면 모르실 것 아니오.”
“어찌 그런…망측한 생각을 하십니까?”
잘못은 반성도 하지 않고 선녀장에게 거짓말로 상제를 속이라는 반하의 안하무인 격 대답에 선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내가 잘못을 하면 선녀장도 단속을 하지 못한 죄로 꾸지람을 들을 것인데 상부상조하면 좋잖소.”
반하가 팔꿈치로 선녀장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그리고 주변을 휘 돌아보고는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상제께서 선물로 주신 달항아리가 안 보이는구나? 누가 깨 먹은 것이냐?”
반하의 말에 어린 선녀들이 흠칫 놀라며 시선을 회피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에 반하가 더 추궁하려 하자 선녀 장이 나섰다.
“반하님을 찾다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요.”
좀 전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는 선녀장의 말에 반하는 속으로 웃으며 무심한 듯 말했다.
“알았다. 그러니 다들 가보거라.”
반하의 말에 선녀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천운각을 벗어났다. 허둥지둥 서로 앞서가려는 통에 발이 엉켜 넘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선녀들은 우르르 천운각을 나섰다. 엄격한 선녀 장과 어린 선녀들이 사라지자 천운각은 다시 조용해졌다.
넓은 실내를 지나 안쪽 방으로 들어간 반하는 침상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천상의 경비병들을 피해 동해를 갔다 오는 길은 꽤 고단한 이동이었다. 몸을 숨기기 위해 달밤에 잠도 자지 않고 빠르게 구름을 바꿔 타며 가야 했으니까.
그래도 청룡의 탄생을 보고 온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다. 몇천 년에 있을까 말까 하는 사건을 본 것이니.
청룡의 기개와 힘은 상상 이상으로 웅장했다. 거대한 물보라와 용오름도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반하는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던 청룡의 모습을 떠올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 부리부리한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그 매서운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자 어느새 몸에 힘이 빠지면서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청룡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하는 청룡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잠이 깨어버렸다.
“반하님! 반하님! 어디 계세요? 직녀가 왔습니다.”
천운각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하는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나가자 의복청을 담당하는 선관 직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하를 반겼다.
“어머, 제가 낮잠을 방해했군요. 반하님. 하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지체할 수 없었답니다.”
“무슨 일인데요?”
반하는 졸린 얼굴로 하품을 하며 물었다.
“그야 성년식 의복을 재단하는 일이죠. 상제님의 무남독녀이신 반하님의 성년식을 기념하러 귀한 분들이 오시는데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가? 성년식이 얼마 남지 않았지.”
“네. 네.”
직녀는 반하의 비위를 맞추며 자연스럽게 몸의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반하의 어깨 치수를 재고 수치를 말하자 직녀를 따라온 직공들이 그 수치를 받아적었다.
귀찮음을 참으며 반하는 직녀가 하라는 대로 팔을 벌리며 물었다.
“성년식에 도대체 누가 오는 데 이리 호들갑이야?”
“그야 높고 귀하신 분들이 오시지요. 사해를 다스리는 용왕들과 운명을 다스리는 문창 제군께서 오신답니다.”
“그리고?”
“아, 그리고 또 누가 오신다더라?”
직녀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조용히 치수를 적고 있던 직공이 직녀에게 귓속말로 넌지시 알려주었다.
“아이고 내가 깜박했네. 이번에 깨어난 청룡도 온답니다. 동해 용왕과 함께.”
“뭐? 청룡?”
반하의 반문에 직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죠. 새로 탄생한 청룡은 상제께 충성을 맹세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청룡이 반하의 성년식을 참석하는 것은 명목상 구색이고 진짜 목적은 상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함이란 말이었다.
“그런가? 하긴 천지 만물이 모두 상제에게 복종해야 하니 청룡도 예외는 없지.”
“암요. 상제의 보살핌을 받지 않고 어찌 이 세상이 돌아가겠습니까?”
직녀는 아부성 발언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했다. 사람이었지만 옥황상제의 눈에 들어 의복청을 담당하는 직분을 얻은 것은 저절로 된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아부와 시의적절한 눈치가 그녀를 현 위치에 있게 만들어 주었다.
“고맙네. 좋은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긴요. 당연한 일인걸요.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직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치수 재는 것을 마무리하고 직공들과 돌아갔다.
반하는 직녀가 돌아간 후 내실을 나와 후원을 유유히 걸었다. 청룡을 다시 볼 날이 없을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그날이 가깝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신수들도 많이 보았지만, 이상하게 그 청룡에게 관심이 갔다. 바다를 뚫고 날아오르는 그 용맹한 모습에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충성스러운 신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천상을 벗어나 멀리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을 텐데.’
그녀에게 아직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군대도 병사도 없는 처지이니 청룡은 탐이 나는 존재였다. 용맹한 신수를 자신의 부하로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하는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꿈이었다.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세계를 통틀어 모든 신수는 상제에게 복종해야 했다. 만약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면 마물로 취급되었다. 마물이 된 신수들은 어둡고 깊은 지하세계에 봉인되어 영원히 어둠을 벗어날 수 없었다.
흑룡이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상제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던 흑룡은 천상의 벌을 받아 지금 어둠 속 심연에서 고통받고 있으니.
반하는 후원에 펼쳐진 넓은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못이라 부르지만, 그 크기가 호수같이 넓은 곳이었다. 넓은 호수 위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수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연꽃을 보며 산책을 하는 것이 반하의 일상이었다.
“아무리 하늘의 연못 천연정이 넓다 하나 역시 지상의 바다보다는 못하네.”
잔잔한 물 위에 핀 연꽃을 어루만지던 반하는 그저 천상의 세계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수백 년의 시간을 머문 곳이기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지만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모든 것이 정갈하고 깨끗하여 어둡고 더러운 것은 한구석도 없는 세계였다.
이따금 지상에서 온 신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지상은 참으로 요지경인 세상이었다. 악독하고 더러운 것과 선하고 깨끗한 것이 뒤섞여 온갖 사건·사고가 벌어지니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반하는 별별 일이 다 벌어진다는 지상 세계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지하세계까지 모든 곳을 두루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상의 온갖 위험을 홀로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에. 그래서 자신을 도와줄 용맹한 신수를 언제가 만나길 기다렸다.
청룡같이 든든한 신수를 데리고 다닌다면 아마 상제도 그녀가 세상을 주유하는 것을 만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욕심에 반하는 청룡을 보기 위해 직접 동해까지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청룡에게 자신의 신수가 되어 달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돌아와 버렸다.
청룡을 직접 마주한 순간 돌처럼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렇게 원하던 청룡의 충성 맹세는 상제의 차지가 될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반하는 내심 실망하며 서운한 마음을 달랬다.
*
직녀가 다녀간 이후 천상의 선녀와 선관들은 손님맞이에 모두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한가한 이는 반하 뿐이었다. 다들 손님맞이를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기에 천운각에는 어린 선녀들만 남아 반하의 시중을 들었다.
청룡을 보고 돌아온 후 반하는 이상하게 천상계가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손님들이 온다지만 그리 흥겨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상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오는 이들은 모두 따분한 말로 아부만 떨 뿐이다.
반하의 마음은 천상계 밖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성년식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아, 따분해.”
반하는 결국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전각을 나섰다. 찬 바람이라도 맞으며 걸어야 답답함이 조금 풀릴 것 같았다.
반하가 밖으로 나오자 어린 선녀들이 그녀의 시중을 들기 위해 그 뒤를 졸졸 쫓아 왔다. 선녀들이 쫓아오거나 말거나 반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오직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어디서 신수를 만나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다가 먼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어 하늘에 별이 나타나고 있었다.
주홍빛 하늘이 서서히 어둑어둑해지더니 별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작은 별빛이 물 위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반하는 연못가에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