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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딸에 빙의했습니다 5권
티카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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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딸에 빙의했습니다 5권
지은이/ 티카티카
발행인/ (주) 삼양씨앤씨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114길 28, 광성빌딩 7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an_gul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7306-438-8 (05810)
(주) 삼양씨앤씨 - 피오렛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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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6―1. 마법사의 탑
17. 초여름
18. 약혼식
19. 엘리아 이야기
20. 에사트 외전
21. 격전
16―1. 마법사의 탑
"좋은 아침입니다."
그가 나에게 아는 척을 해보이자 다른 사람이 의아한 듯 질문했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바보, 신입을 모를 리가 없잖아."
옆에서 또 다른 사람이 그를 타박했다.
"신입, 그러니까 라일라 공녀님의 이름이 유명하니까?"
"그것도 있지만…."
"새로운 단원이 오랜만에 들어온 것도 있고."
"나, 저 두 분이 연회에서 춤을 추는 걸 본 것 같은데."
개중에 우리 둘이 연회에서 춤을 춘 걸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테아는 시치미를 뗐다.
"테아로하 황자님과는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예요."
그러자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은 건지 아아, 하고 자기들끼리 수긍했다. 금세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사그러들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여기 마법사들은 자기 분야가 아닌 남 일에는 큰 관심이 없거나, 있더라도 금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여기서는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테아가 말했다. 아무래도 남들 앞인 데다 공무 중이니 사석에서처럼 그를 테아라고 부르거나 반말을 쓸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그도 그 나름대로의 내 편의를 봐주겠다는 말 같았다.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내가 묻자 옆에서 헤스티아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모두 단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단장님."
나는 입안에서 그 호칭을 굴려보았다. 단장님이라, 딱 좋은 호칭이었다. 나는 궁정 마법사 단원이니까.
"단장님."
내가 그렇게 다시 한번 테아를 부르자, 테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일라."
"……."
이상하게 어쩐지 몸이 배배 꼬이는 것 같았다. 그가 나의 직속 상사라니 기분이 묘했다.
부단장은 나에게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여기 마법사들은 무조건 연구 보고서와 일지를 쓰게 되어있는 거 알지? 최종 승인 같은 건 모두 여기 테아로하 단장님께 가니까, 잘 보여 두는 게 좋을 거라고. 아무리 어릴 적부터의 친구 사이여도 말이야."
그의 농담식의 말투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연구 예산 책정도 단장님의 몫이니까."
"힘내요. 라일라."
나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단장님께 잘 보이는 수밖에 없겠군요."
"어떤 식으로?"
"글쎄, 단장실에 매일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할까요?"
테아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마법사의 탑에 자주 들르게 될 것 같군요."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단원들은 그저 좋아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새삼 그가 이곳에서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깨달았다.
테아는 정말로 강한 마법사다. 평생을 바쳐서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이곳의 마법사들에게 테아는 또 다른 연구대상이자 존경스러운 선생님쯤이 되는 것 같았다.
듣기로는 테아 이전의 궁정 마법사 단장 자리는 몇 년간 계속 비어있었다고 했다.
워낙에 괴팍한 마법사들이어서 그들을 통합하기 어렵기도 했고, 특출난 인재가 없어서 고민을 안고 있었다나.
하지만 몇 년 전, 황제가 테아에게 궁정 마법사로부터 마법에 대해 배우라고 명했던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탑에 들어왔던 테아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다른 마법사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그 눈부신 재능과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 마법사들은 황제에게 '테아를 궁정 마법사 단장으로 부디 임명해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다고 한다.
그 결과, 테아는 정말로 이곳의 주인이 되었다.
마법사들은 테아의 옆에 가서 자신의 연구나 논문 등에 대해 열띤 목소리로 토론하고 있었다.
그 중앙에 서있는 테아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기 있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 * *
궁정 마법사로서의 내 첫번째 연구는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들을 위한 마법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윈 왕국에서 루기미 병이나 다른 병들을 고치는 마법약을 만든 이후부터 나는 줄곧 사람을 살리는 마법약에 대해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마법사의 탑에 정식으로 출근하게 된 이후에는 그 방향에 대해서 이리저리 연구해보고 있었고 말이다.
그 주제를 고르게 된 것은 황제의 영향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무척이나 노쇠하고 면역력이 약해진 그는 최근 들어 한 번 병에 걸리면 좋다는 갖은 약재를 다 써도 그다지 차도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와 같은 병자의 면역력 체계부터 천천히 연구해볼 참이었던 것이다.
황제는 처음 내게 약속했던 것처럼 나에게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비싼 마법 약재나 최신 논문을 사는 데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나에게 주곤 했다.
물론 그만큼의 값을 해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황제는 주기적으로 나를 불러서 자신의 병을 보게 하곤 했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황제는 늘 그랬듯이 커다란 옥좌 위에 앉아 있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옥좌는 아름답게 빛났지만 그 위에 앉은 황제는 너무나 피곤해보였다. 옆에는 그의 맥을 짚고 있는 의원들과 몇 명의 간호원이 서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주치의가 불러주는 대로 황제의 상태를 종이에 적기도 하고, 이따금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황제가 건강을 조금이라도 더 되찾게 하기 위해선 그의 상태를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꼼꼼하게 그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는데, 문득 황제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로샤힐 가문에 경사가 생겼다고 하지?"
"아, 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첫째 오라버니의 첫 아이예요.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답니다."
"남자 아이인가, 여자 아이인가?"
"남자 아이랍니다. 이름은 라그윈이에요."
"그래, 잘 됐군."
거기에서 말이 끝날 줄 알았는데, 황제는 기억을 더듬는 듯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내 첫아이는 알테오였지."
그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나는 잠시 펜을 내려놓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사랑하는 카르디아의 아이였어. 태어난 순간을 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지. 금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가 어찌나 훤하던지…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아이의 이름을 알테오라고 지어주었네."
나는 무심코 황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알테오를 무척 편애하는 것은 항상 유명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늘 궁금했었다.
대체 왜 그렇게 알테오만을 편애했던 걸까?
하지만 그걸 함부로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나는 에둘러 다른 식으로 질문하기로 했다.
"테아로하 황자님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시지 않으셨나요? 알테오 황자님과 그 분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시니까요."
"테아로하…."
알테오는 여름에 태어났고, 테아는 겨울에 태어났다.
1년 조금 넘게 나이 차이가 나긴 했어도, 둘의 성장 속도가 그렇게까지 차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기억을 잠깐 곱씹는 듯 하더니 툭 내뱉었다.
"…어째서인지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희미한지 모르겠군."
"……."
나는 딱딱해진 표정을 숨기기 위해 눈을 내리깔았다.
희미한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테아는 유년기 시절에 부모님의 손길을 거의 못 받고 자랐다고 했으니까. 황제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는 듯 했다.
"아니, 테아로하뿐만이 아니야. 디트미엘이나 피아테르의 기억도 어쩐지 희미해."
디트미엘은 3황자님, 피아테르는 4황자님이었다.
그나마 테아로하는 황후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알테오만큼이나 주목받을 수 있었지만, 디트미엘이나 피아테르는 후궁 출신의 소생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빛을 덜 받았다. 지금만해도 황태자 계승에 이름이 튀어나오는 건 알테오와 테아로하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배경에는 황제의 무심함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제국 제일의 권력자가 알테오 이외에는 관심이 없으니, 자연히 사람들은 알테오만을 신경 쓰게 되었다.
아무리 공사다망한 황제였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는 절대 좋은 아버지나 남편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잠깐 숙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아가 그를 걱정하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황제의 건강을 이야기하는 테아의 모습은 분명히 쓸쓸해보였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게 된다면 테아는 무척이나 슬퍼할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니까. 자신에게 한 점 애정을 주지 않았던 아버지마저 포용할 정도로.
그래서 내가 더더욱 팔을 걷어붙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가 없지요."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다른 황자님들과 시간을 가져보신다면 어떨까요? 요즘은 날씨가 따뜻하니 나들이를 가기에도 무척 좋을 거예요."
"음…."
"특히 테아로하 황자님께서는 전쟁에 다녀오느라 몇 달이나 황궁을 계속 비우셨으니까요. 화려한 개선식이나 연회도 좋지만 가끔은 가족 간의 시간을 보내시는 건 어떠신가요?"
황제는 작게 신음성을 냈다.
"그렇군. 나는 정작 그 아이들하고는 시간을 보내본 적이 거의 없으니. 아니,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커버렸겠지만…."
황제의 늙고 주름진 얼굴에 한가지의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사람이 어느날 문득 물끄러미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무심코 회한을 느끼곤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잠시 뒤에 말을 이었다.
"언젠가 그 녀석들과 함께 나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네, 물론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