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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 유비 9권
생존왕 하후무
위연은 병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출세에 대한 갈망이 있다.
주군인 유비가 이번 전쟁에서 명성을 얻으라 명했을 때, 그는 내심 기뻐했다.
소속이 손권군인 게 찝찝했지만, 조맹덕이 자신의 목에 성 하나를 걸었다는 말에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장웅의 공을 위연이 받았기 때문이다.
하후연을 죽인 것은 장웅인데, 투창이 자신의 것이어서 명성을 얻은 것이다.
그 뒤로도 위연은 축성을 하고, 마초군의 철기와 함께 조조군을 궁지로 몰아넣는 등 계속 공을 세우고 명성을 높였다.
하지만 위연의 생각에 그것 또한 장웅이 시킨 대로 해서 생긴 일이다.
즉, 자신은 허명, 실제로는 세운 공이 없거나 아주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살아있는 군공이 있다.
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장합을 일기토로 베면 위연의 명성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동잔도의 승부가 조조군에게 전해지면 위연의 명성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을 수도 있다.
대충 팔 할은 조작된 것이지만, 장합을 베면 이 할은 진실이 되니 조금은 떳떳하게 연기할 수 있다.
위연은 장합을 보았다.
독기어린 뱀과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뱀을 한두 번 본 위연이 아니다.
“지휘 잘하는 장수치고, 본인 무위가 높은 사람이 별로 없지.”
지휘도 잘하고 무력도 뛰어나면 그게 사람인가?
뭐, 찾으면 있긴 있다.
관우, 장비, 조운, 황충, 악진, 감녕...
“생각해보니 많네. 그쪽 동네가 대단하긴 대단해.”
유비는 뺐다. 
유비는 장수가 아닌 군주니까.
주군이니까 자신이 평가할 수 없다.
어쨌든 이번 전투로 위연 자신도 그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와랏!”
위연은 크게 외쳤다.
장합은 대답하지 않고 칼을 크게 휘둘렀다.
위연도 질 새라 맞받아쳤다.
둘 다 창이 아닌 대감도를 썼다.
크고 두꺼워서 일반 병사들은 들기도 힘든 칼이다.
몇 합을 겨루고, 위연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정도 무력으로 내 앞에서 칼을 휘두르다니! 건방지다!”
장합도 어디 가서 무력이 떨어지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위연은 타고난 힘에 다년간 여러 교관이랄까 스승이랄까...
죽도록 구르며 갈고 닦은 실력이다.
이제는 장비랑 붙어도 한참을 비비는 수준까지 왔다.
잠재력을 극한까지 깨웠다고 할까?
반면 장합은 고람에게 선봉을 맡기고 지휘 쪽으로 집중했다.
그 결과 훌륭한 지휘관이 되었지만, 무력 쪽은 개화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위연은 투지가 한계를 넘어 자신의 몸속에 신이 들어온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관우나 장비에게 들은 적이 있다.
집중을 하다보면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력을 쓸 수 있다고.
드디어 나도 그런 경지에 들어섰구나!
“으라차차차차차차차!”
카카카카카카카카캉
난격!
숨도 쉬지 않고 계속 공격을 해대는 위연의 공격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런데 힘도 강해서 도가 부딪칠 때마다 장합의 도에 이가 나갔다.
쩍
드디어 장합의 도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그리고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위연의 도가 연속해서 장합의 몸을 난도질했다.
“으아악!”
“하하하하, 이게 바로 나 위연의 힘이다!”
그토록 격하게 움직였음에도 위연의 호흡은 그다지 거칠어지지 않았다.
마치 심장이 두 개 있어서 아무리 힘을 써도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위연은 땅에 쓰러진 장합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장합의 부하들을 보았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 쓴 위연의 모습은 흉신악살 그 자체였다.
위연은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투구를 벗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흉악해 보일 때는 바로 투구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냈을 때라는 것을.
“어억!”
과연 장합의 부하들은 놀라서 경악성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개중에는 오줌을 지리는 자도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위연의 머리, 방금 전까지 투구를 쓰고 있어서 그곳만큼은 피가 튀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 앞면부터 몸통은 온통 피투성이.
햇살을 반사하는 하얀 민머리와 피에 젖은 악귀 같은 얼굴이 대비되니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있었다.
위연은 대감도를 앞으로 세우며 외쳤다.
“뭣들 하느냐?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라!”
“으아아아아!”
위연의 외침에 위연의 부하가 움직이기 전에 장합군의 병사들이 먼저 반응했다.
그들은 무기와 투구를 벗어던지며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해서 빠르게 도망을 가야 했다.
땅에 던진 투구가 걸려서 적이 쫓아오는 데 방해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위연은 입으로는 외쳤지만 적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앞으로 세웠던 칼을 옆으로 돌려 병사들의 추격을 막았다.
한 놈이라도 더 살아서 도망가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승부가 조조군에게 널리 퍼질 테니까.
위연은 친위병 중 한 명에게 말했다.
“장웅군으로 전령을 보내라. 목표인 장준예를 잡았다고.”
“옛!”
일이 되려니까 이렇게 쉽게 되는구나.
그동안 어떻게 장합을 따로 떼서 제거할까 거의 한 달을 고민했다.
장합이 빈틈을 보이지 않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는데, 저쪽에서 알아서 나와 주었다.
“이는 다 주군의 덕이 하늘을 움직인 것이다. 암.”
위연에게 있어 유비는 종교와도 같았다.
그가 세운 작전이니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
“그런가, 장합이 갔구나.”
보고를 받은 장웅은 시원섭섭한 심정이 되었다.
장료 때와 비슷했다.
하후연을 잡았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황충이 잡을 자이니, 자신이 잡는 게 어쩌면 강제력의 작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료는 전사하지 않고 병사해야 하는데, 장웅 자신이 직접 잡았다.
장합도 나중에 전사하기는 해도 아직 한참 더 활약을 해야 하는 명장인데, 뜨자마자 잡았다.
“이게 전쟁이겠지. 강제력도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거고...”
갑자기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즉, 정말로 어이없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집을 떠나 오래되니, 다시 집이 생각난다.
집에는 부인이 둘이나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 패왕의 심장이 만족을 했나보군.”
머리에 피가 오르지 않는다.
적을 죽이고, 강자와 싸우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졌다.
장료를 잡은 날부터 그랬다.
위연이 장합을 잡았다는 보고를 들어도, 기쁨보다는 허무함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을 뿐이다.
“오자양장 중 둘이 전사했으니, 후대에는 삼자양장이라고 바뀌려나? 아니지 악진도 조맹덕 휘하가 아니니 오자양장이라는 말이 사라지겠군. 아니면 새로운 멤버로 바뀌거나.”
장료, 장합, 악진, 서황, 우금.
이들이 원래 위나라를 대표하는 다섯 장수다.
촉의 오호대장군,
오의 강동십이호신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그런데 악진은 초반에 유비가 조조와 딜을 해서 영입했다.
이번에 장료와 장합을 잡았으니 이제 우금과 서황만 남았다.
“마지막까지 잘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지. 이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자.”
장웅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냉정하게 하후무군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
“그런가, 장장군께서 전사하신 건가...”
하후무는 동잔도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장합의 전사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돌아온 병사는 울고 있었다.
하후무도 같이 울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제 평야지대까지 지척이다.
저곳으로 나가면 적이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 올 것이다.
최대한 살린다!
하지만 최우선 임무는 호표기를 보내 조엄에게 마초군의 공격을 알리는 것이다.
하후무는 호표기를 보내고 자신은 남아 최후까지 마초군을 막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후위군이 흩어지지 않고 끝까지 싸워 버틸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서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병사가 허겁지겁 와서 보고했다.
“위연군입니다! 서쪽에 위연군이 공격해 옵니다!”
“당황하지 마라! 일천의 방패병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나머지는 계속 이동한다. 절대 서두르지 마라! 오와 열을 유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