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7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7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7
백원도둑놈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7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7권
Chapter 01.
제르우스와의 대련― 아니, ‘결투’가 끝난 후.
나는 방에 돌아와 곧바로 샤워를 했다. 30분씩이나 이어진 혈투에 나는 건강 목걸이를 차고 있었음에도 몸이 굉장히 지쳤다.
‘……이렇게 몸이 힘든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
과연 제르우스랄까.
그와의 싸움은 건강 목걸이로도 힘에 부쳤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체력 훈련과 검을 단련했음에도 말이다.
쏴아아―.
몸에 흐르는 따뜻한 물이 팔과 손을 스치는 게 아릿하게 느껴진다.
‘손목이 부었어.’
제르우스의 일격 하나하나가 마치 강철을 검으로 두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건강 목걸이가 없었다면, 나는 제르우스의 검을 몇 번 막지도 못하고 검을 놓쳤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내가 100일 훈련하는 것보다.
다른 기사들 백 명과 훈련하는 것보다.
제르우스와의 대련 한 번에서 나는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왕이 가르쳐준 검술이 기교의 극치였다면, 제르우스의 검술은 기본기의 정점이었어.’
물론 한 번의 대련으로 제르우스의 기본기를 전부 배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얻겠다고 했단 말이지?’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좋은 결과였다.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얻고 탈 수 있다면,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얻는 격이니깐.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탈 수 있으면 미끼 역할을 하다가 함정에 빠져 죽지 않을 거야. 그리폰을 타고 날아가면 되니깐…….’
가만?
‘그럼 원래의 미래에는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타지 못하는 거였나?’
뭔가 이상했다.
‘나는 신록의 안식처에서 그리폰을 백 마리 넘게 데려왔어. 그러니 당연히 제르우스든 다른 기사든 그리폰을 탈 수 있도록 연습시켰겠지. 왕국군 전력 강화에 필수적이니깐.’
그런데 <미래 일기>에는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탄다는 말이 나와 있지 않았다.
애초에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탈 수 있었다면, 「함정 범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구덩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내용도 없었을 것이다.
‘설마…… 제르우스는 그리폰을 타지 못하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르우스다. 마족과의 전쟁, 나는 듣기만 했던 그 치열하고 끔찍한 전쟁에서 ‘전장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라 칭송받은 위대한 기사이자 영웅.
그런 용기 있는 자가 그리폰의 선택을 받지 못할 리가 없잖나.
‘그래, 그렇겠지…… 근데 왜 이렇게 찜찜하지?’
흠―.
‘만약 제르우스가 그리폰을 타지 못하고, 그럼에도 계속 자기가 미끼가 되겠다고 하면…… 그러면 내 그리폰을 제르우스 주위에 대기시켜야겠어. 함정에 떨어질 것 같으면 낚아채라고.’
문제는 그렇게 하면 내가 그리폰을 타고 싸우지 못한다는 거다.
퍼랄타의 전략상, 나와 제르우스 둘 중 하나는 몬스터 산맥 남쪽이나 북쪽 둘 중 하나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빨리 씻고 <미래 일기>를 읽어보자. 무슨 변화든 나와 있을 테니.’
끼익―.
샤워 물을 잠갔다.
* * *
제르우스의 집무실.
레오나르도가 조금 전 결투를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제르우스도 마찬가지였다.
‘……필립과 대련했을 때, 그때와 비슷했다.’
이제 고작 열일곱이 된 젊은 왕.
그러나 그의 검술은, 마치 필립 왕이 서른 줄에 다다랐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떻게든 검을 떨어뜨리려고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전하께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공격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그 모든 걸 막아내거나 흘려내셨고…… 결국 반격까지 하셨지.’
결투 후반부에는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검에 실린 무게는 자신에게는 가벼웠지만 분명 위협적이었다. 급소만을 노리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전하는 필립의 검술을 그대로 닮으셨어. 내 공간을 베면서 파고드는…… 점차 주도권을 가져가는 마법과 같은 검술.’
만약 바루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하와 나,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쳤겠지. 나도 마지막 역습을 노리고 있었으니.’
제르우스는 만감이 교차했다.
‘왕께서 그토록 훌륭하게 성장하신 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늙은 게 서럽구나. 10년만 젊었다면 전하의 검을 떨어뜨릴 수 있었을 텐데.’
여전히 제르우스는 왕국을 넘어 인류 최고의 기사 중 하나였다. 명성과 명예만을 따지면, 그런 위대한 기사들 모두가 최고라고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에 갈수록 약해지는 자신은, 노장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필립, 빅토리아. 너희 둘의 아들은 정말 잘 성장했다. 모든 면에서. 역시 너희 둘의 아들―.’
제르우스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보며 생각하던 그때.
딸깍―.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기사단장의 집무실에 노크도 없이 들어올 만한 사람은 이 왕국에 딱 둘밖에 없다.
‘바루트인가? 아니면―.’
“제르우스, 괜찮아?”
바루트가 아닌 다른 한 명.
실비아였다.
실비아가 집무실에 들어오자 제르우스는 어째서인지 조금 전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제르우스가 자세를 가다듬으며 실비아에게 답했다.
“괜찮다. 그 정도 대련으로 다치거나 지칠 내가 아니다.”
“대단한 기사니깐 그렇기야 하겠지만…… 아까 연병장에서 보니깐 꽤 고전하는 것 같던데.”
“…….”
“정말 괜찮아?”
괜찮느냐라…….
“나를 걱정해주는 건가?”
“당연히 걱정하지! 그래도 우리, 뭐…… 좀 친하잖아.”
제르우스는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확히는 ‘싸운 것 때문에’ 걱정해주는 게 오랜만이었다.
그게 제르우스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받아서는 안 될 걱정과 마음을 받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유는 제르우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괜찮다. 그보다 실비아, 물어볼 게 있는데.”
“그리폰을 어떻게 얻냐고?”
이런 점도 빅토리아와 비슷했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바로 자신이 궁금하거나 필요한 걸 알아챘던 빅토리아와.
“보통 그리폰은 ‘그리폰의 절벽’에서 시험을 받아서 얻을 수 있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담력 시험인데,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그리폰을 얻었지.”
“절벽에서 뛰어내리셨다고…… 전하께서?”
“응. 파라스 말로는 그냥 절벽에 가자마자 뛰어내렸다더라고.”
나는 그걸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하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요안나도 절벽에서 뛰어내린 건가?”
“아, 그 아이는 아니야. 그 아이는 그냥 그리폰이 다가왔대. 걔가 얻은 그리폰은 레오나르도가 얻은 ‘알파 그리폰’을 따라서 온 새끼 그리폰인데, 요안나가 마음에 들었나 봐.”
“마음에 들었다라…… 그럼 나도 그렇게 그리폰을 얻을 수 있나?”
“그러지 않을까? 너 정도 되는 기사라면 어느 그리폰이든 좋아할 것 같은데.”
실비아가 밝게 웃으며 말하다가.
살짝 신중하게 표정을 바꿨다.
“다만…… 아마 어떤 그리폰을 얻더라도 레오나르도의 그리폰보다는 느릴 거야. 레오나르도의 그리폰은 ‘알파 그리폰’이니깐.”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나? 전하의 그리폰과 다른 그리폰은?”
“그야 그렇지. 알파 그리폰은 수백 년 만에 처음 나타난 그리폰이니깐. 그리폰계의 제르우스, 너랄까?”
또 생긋 웃는 실비아.
제르우스는 그 얼굴에 다른 여자가 겹쳐서, 시선을 피했다.
‘전하의 그리폰은 카르툼 같은 녀석인 거군. 명마 중의 명마…… 카르툼.’
그렇다는 것은 왕과의 ‘누가 빨리 도망칠 수 있나’ 시합은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제르우스는 벌써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금의 재능도 없었던 나는 노력만으로 기사가 되었고, 기사단장까지 되었다. 나는 재능이 아닌 노력의 승리를 믿는다.’
“그럼 실비아, 부탁 하나 해도 되나?”
“그리폰 얻는 것 도와주고, 타는 것도 가르쳐달라고?”
이번에도 또, 실비아는 빅토리아와 같았다.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 그리고 목소리까지.
“다 해줄게. 근데 그리폰은 왕도 동쪽 멀리 있는 숲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겠어? 왕도에서 왔다 갔다 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텐데.”
“너도 그리폰을 타던데, 같이 타면 안 되나?”
“그리폰들은 자기 주인 말고 다른 자가 만지는 거 엄청 싫어해. 등에 태우는 건 정말 진짜 엄~청 싫어하고. ……파라스 그놈은 그걸 알면서도 레오나르도의 그리폰 뒤에 얻어타긴 했지만, 아마 레오나르도 그리폰이 속으로 엄청 욕했을걸?”
“음…… 그렇군.”
“한두 번 정도는 태워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 이상은 안 돼. 자꾸 자기가 싫은 것 시키면, 그리폰이 날 떠날 수도 있거든.”
실비아가 미안해하며 멋쩍게 웃으며 말하다가.
짝―!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냥 너랑 나랑 둘이 숲에 가서 살면 어때? 그리폰을 얻어서 제대로 탈 수 있을 때까지!”
“……?”
“아, 너는 바빠서 안 되려나?”
숲에서 둘이 같이 지내자니.
생각지도 못한 실비아의 제안에 제르우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또, 제르우스의 입장에서는 거절하는 게 맞았다. 기사단장의 입장으로서 전쟁 준비 기간에 자리를 비우는 건 옳지 않으니깐.
‘이미 전반적인 준비는 다 끝내놨고…… 세세한 부분은 하겐이 해줄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자리를 비우는 건…….’
그렇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다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