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아니, 그가 떠난다. 사랑은 사치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마음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사랑의 바람을 불어넣고, 그것이 지나간 흔적만을 아프게 남겨 두고 그가 떠난다.'마치 그녀가 그곳에 서 있는 걸 아는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그의 표정은 유리 밖으로 보이는 겨울날의 정취만큼이나 스산했다. 못 본 사이 많이 자란 머리칼과 야윈 몸, 광채를 잃은 눈동자…… 어디서나 반짝반짝 빛이 나던 사람을 저렇게 만든 건 바로 자신이다.'출국장 한구석에서 그를 지켜보던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모습이, 눈빛이, 닫히는 문틈으로 조금씩 사라져가자 똑바로 뜨고 있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문이 닫히는 순간, 점퍼를 입었음에도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몸이 약간 비틀거렸다. 이제 더 이상 한국 땅에 그가 없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없다 생각하니 깊어진 절망감이 강한 척 버티던 그녀를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