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디리링.'꽤 넓은 공간이었다. 신인가수들, 안무가들, 백댄서들, 기성가수들, 그 누구랄 것 없이 이용하는 이 연습실은 별다른 가구 하나 없이 넓기만 한 공간이었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 싸여 있었고, 공간 속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커다란 오디오 세트가 연습실 한쪽 벽에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딩, 딩, 디리링.'기타 줄을 튕기는 가는 소리가 한쪽 벽에 부딪쳤다가 다시 맞은편 벽으로 부딪치며 본래의 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언뜻 보아서는 사람의 인영 같은 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넓은 공간 한 구석에서, 다시 맑은 통기타의 음이 흘러나왔다.'줄 하나, 하나를 튕기는 소리가 감미로웠다. 손가락 하나, 하나를 움직여 줄을 튕길 때마다 감미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완벽하게 튜닝 된 기타 줄을 튕기는 여자의 모습이 아련한 그림자처럼 공간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탁.'공간과 여자, 그리고 낡은 통기타만 존재하는 곳으로 낯선 타인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낯선 이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눈을 감은 모습, 그대로였다.'“은수야.”'“…….”'채영은 벽에 기댄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힘없이 무너지는 친구의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속이 상했다. 왜 이래야 하는가? 왜? 누구보다 화려한 삶과 아름다운 생활을 누려야할 정은수가 왜!'하지만 채영은 자신의 끓어오르는 속을 잠재우며 다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악보가 완성됐어. 준철 선배가 한번 보고 어떤지 말하라고 하더라.”'채영이 악보를 내밀었다. 그제서야 은수의 눈이 떠졌다. 감겨진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벽에 기댄 머리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야윈 손을 내밀었다. 뼈마디가 앙상하게 불거진 친구의 하얀 손을 보며 채영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왜 이렇게 야위었어? 뭔가 먹기는 하는 거니? 정말 이대로 죽을 거야?’'하지만 이번에도 채영은 속의 말을 끄집어 낼 수 없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었다. 1년이 지나던, 10년이 지나던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사람은 바로 정은수, 그녀였다.'채영은 더 이상 친구의 모습을 보기 싫어 등을 돌렸다. 이번만은 보기 싫었다. 그 남자의 소식 하나에 또다시 무너지는 친구의 모습이 이번에는 정말 보기 싫었다.'탁!'연습실 문이 선명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은수는 슬픈 눈을 들어 조금 전 채영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채영이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다. 이젠 좀 괜찮아졌다 싶었지만 또다시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을 것이다. '닫힌 문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가에 잔잔한 물기가 어렸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나도 의연하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어쩔 수 없었다. 다른 모든 것에 귀를 닫고 눈을 감아도 그의 이름 석 자 앞에서는 무너지는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슬픈 빗소리에도 그를 떠올리고, 아련한 바람 소리에도 그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젠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렇게 같은 하늘 아래 그의 숨결을 느낄 때면 또다시 무너지는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