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한 부부가 새 출발을 하려고 한다.

화려한 분위기의 예식장은, 화려함에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더했다.

하지만 설레는 분위기는 없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십니까?”

“…네.”

도한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신랑의 표정이 아니었다.

“신부는 신랑은 사랑하십니까?”

“…….”

“큼,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십니까?”

고급스러운 예식장만큼이나 고급스러운 외모의 여성은 대답이 없었다.

주례가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던 그때였다.

“아니요. 신부는 결혼하지 않습니다.”

한 여성이 등장했다.

이내 결혼식은 소란스러워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등장한 여성에게 쏠렸다.

“몰래카메란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당황한 듯 얼어붙었다.

“가자.”

중단발 길이의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성은 분홍색의 세미 정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 여성은 신부의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사실… 애인 있었어요.”

부케를 집어 던진 신부의 발언에 결혼식장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 길로 신부와 정체 모를 여성은, 결혼식장을 나갔다.

“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신랑 도한은,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

“하하하, 봤어요? 우리 부모님이랑 사람들 표정 완전 벙찐 거.”

홀가분하게 웃는 신부와는 달리, 해별은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었다.

방금, 남의 결혼식을 파투 낸 여성의 이름은 ‘이해별’이었고, 그녀는 지금 알바 중이었다.

이름하여 ‘이별 대행 서비스.’

“신랑 될 뻔한 사람 봤죠? 하마터면 친구랑 결혼할 뻔했어요. 내 오랜 친구라 이렇게 끝낸 게 미안하긴 한데… 끙차, 마음에도 없는 결혼생활 하는 것보단 뭐 낫죠.”

미리 준비된 차에서 힘겹게 웨딩드레스를 벗은 의뢰인은, 편한 옷을 입었다.

“고마워요.”

“어쨌거나 커밍아웃한 건데, 괜찮아요? 차라리 결혼식 하기 전에 터트리시지.”

어차피 커밍아웃할 거.

해별은 이해 가지 않는 눈빛으로 의뢰인을 쳐다보았다.

“차라리 오늘 같은 날 터트려야 제대로 하자가 남죠. 우리 부모님, 두 번 다신 정략결혼 시킬 생각 못 하실 걸요?”

왜지.

대책 없는 것 같은데, 왜 멋있어 보이는 거지.

“여기요. 오늘 고마웠어요.”

“아, 네.”

해별은 의뢰인이 건넨 돈뭉치를 받았다.

와… 이 두툼한 돈뭉치가 온전히 내 거란 말이지.

감격에 겨운 표정의 해별을 보며, 의뢰인이 웃었다.

“내가 동성애자라 해도 겁 안 내네요?”

“겁을 왜 내요? 그리고 사귀는 사람 있다면서요?”

“오, 기억력 좋다. 핸드폰 줘봐요.”

“핸드폰이요?”

해별이 의뢰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 홍이서는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 추후 문제가 될 시, 법적인 책임을 모두 지겠습니다.”

녹음을 마친 그녀가 다시 해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확실하게 해두면 좋잖아요.”

“뭐 이렇게까지….”

“내 애인 지키자고 이별 대행 이용한 거긴 한데, 나 때문에 피해 보면 억울하잖아요.”

참 독특한 의뢰인이라고 해별은 생각했다.

“집에 바로 가요?”

“네, 오늘 일이 끝나서요.”

“그럼, 언젠가 또 봐요.”

“네. 용기 낸 거 축하해요.”

미소로 답하는 의뢰인을 보며 해별은, 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이별 대행 알바가 끝이 났다.

*

오늘이 오기 며칠 전.

“이 사람, 양다리였어요. 몰랐죠? 저도 이제 알았어요.”

“하.”

그날도 해별은 어김없이 알바 중이었다.

그리고 방금, 한 커플의 이별을 성공시켰다.

여성이 상처받은 얼굴로 카페를 나가는 것을 본 해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이별 대행하면 수수료, 얼마나 떼요?”

“누, 누구세요?”

한 여성이 자신의 앞에 앉았다.

큰 키에 쇼트커트를 한 여성은, 걸 크러쉬한 느낌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곱게 자랐을 것 같은 포스를 풍겼다.

그런데 이 여자, 내가 이별 대행 일을 하는 것을 알고 있어?

“제 이별도 도와주세요. 수수료 떼이지 말라고 따로 찾아온 거예요.”

“어….”

여성의 단호한 말에 해별은 잠깐 고민했다.

오늘 알바가 마지막이었는데.

하지만 사장님을 통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500만 원.”

오, 오백…!

금액도 흔한 금액이 아니었다.

“원하는 이별 방법이 있나요?”

해별은 이내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했다.

사장님, 죄송해요. 뭐, 업체를 통한 게 아니니 사장님도 모르시겠지.

“이날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성이 내미는 걸 본 해별의 눈이 커졌다.

청첩장…!

“겨, 결혼식 날이요?”

“제 결혼식이에요. 비공개 결혼식이라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어쩐지.

단순한 이별에 오백을 부르더라니!

차라리 범죄 집단이면 확실한 거절이라도 할 수 있지.

“제가 사실 동성애자거든요. 사귀는 사람도 있구요. 그런데 집에서 정략결혼을 밀어붙이네요.”

놀람에 놀람의 연속이었다.

말로만 듣던 정략결혼도 그렇고, 성 소수자라는 사실도 그렇고.

“혹시 그쪽이 결혼식을 망쳤단 이유로 소송을 당하게 된다면, 제가 뒤처리도 다 해드릴게요.”

*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신랑 강도한, 신부 홍이서’라고 적힌 예식장 앞에서 해별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렇게 화려한 결혼식장은 처음이었다.

이런 곳에 결혼하러 오는 것도, 남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오는 것도 아닌, 남의 결혼식을 깨러 왔다.

한마디로 깽판 놓으러 왔다.

“여기요.”

경호원들에게 해별은 이서에게 받은 청첩장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자신은, 영락없는 하객이겠지.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십니까?”

“…….”

“큼,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십니까?”

드디어 해별은 결혼식장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대답 없는 신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니요. 신부는 결혼하지 않습니다.”

차분한 말투와는 달리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자.”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사실… 애인 있었어요.”

해별이 신부의 손을 잡았을 때, 신부가 말했다.

그리고… 식장을 빠져나오기 직전, 해별은 신랑의 얼굴을 살폈다.

앞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큰 키에 빼어난 외모를 가진 새신랑은, 허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해별은 괜히 미안한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저 얼굴로 어쩌다 동성애자와 엮여선.

*

의뢰인과 헤어진 해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무실과 원룸의 월세를 내는 일이었다.

“돈 오백이 스쳐 가는구나.”

남의 결혼식을 파탄 낸 대가로 들어온 돈은, 그녀를 살짝 터치만 하곤 매몰차게 사라졌다.

이별 대행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녀의 본업은… 무려 변호사였다.

“개천에서 난 용은 무슨.”

도롱뇽이라면 모를까.

해별이 로펌 구인 구직 사이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변호사 3만 명 시대.

지방대의 로스쿨을 졸업해, 겨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녀를 원하는 로펌은 없었다.

“그사세네, 그사세.”

그래서 그녀는 허름한 변호사 사무실을 구했다.

하지만, 모든 의뢰인은 대형 로펌에만 몰리는지, 자신을 찾아주는 의뢰인은 없었다.

한마디로 변호사 직업을 가지고 버는 소득이 없었다.

사람 사이를 깨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 돈 벌려고 했지.

“흠… 좋은 사람 만나요.”

갑자기 그녀의 머릿속에 결혼식에서 봤던 남자가 떠올랐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허탈한 표정을 짓던 남자를.

“하지 말 걸 그랬나.”

그 남자가, 왠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

“다녀오셨어요?”

“쟤는… 왜 또 여기 있어?”

사무실로 들어온 도한이, 친구를 보고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

“내가 몇 번을 말하지? 네가 개인적으로 이용하라고 사무실 개업한 거 아니라고.”

결혼식장에서 보기 좋게 파혼당한 그는, 아버지 밑에서 나와 ‘강도한 법률 사무소’를 차렸다.

사무장으로 고용한 ‘박민준’과 사무실을 운영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계속 불청객이 찾아온다.

“빈방이잖아. 내가 좀 쓰자아아아.”

“너도 사무실 있잖아!”

“희한하게 여기서만 작업이 잘 된단 말이야아.”

능청을 떠는 그 불청객의 이름은 ‘정준엽’이었다.

도한의 오랜 친구이자 스타 작가인 준엽은, 꼭 이렇게 도한의 사무실에서 빈대를 붙었다.

“민준아.”

“네.”

“저 방, 별산제 변호사 구한다고 해.”

“진짜요?”

“어, 애초에 저 방을 비워 놓는 게 아니었어.”

준엽이 절망하면서 되물었다.

“엥? 농담이지, 도한쓰?”

“민준아, 진심이야. 꼭 올려.”

“어? 보증금이랑 월세는요?”

“너 알아서 그냥 아무렇게나 싸게 올려.”

그 길로 도한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노, 농담이지? 야! 강도한!”

준엽이 소리쳤지만, 도한의 방문은 굳게 닫힌 뒤였다.

“그러길래 적당히 하시지 그러셨어요.”

“글 안 올릴 거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저 죽어요.”

“사무장님?”

“이럴 때만 ‘님’이라지.”

*

“아줌마! 도와드릴게요.”

“아이참, 혼자 해도 되는데.”

“어차피 도와드릴 수 있는 날도 며칠 안 남았어요.”

“어, 어?”

다 늦은 저녁, 사무실로 가던 해별은 근처 단골 분식집의 마감을 도왔다.

“어찌어찌 버텼는데, 1년이 한계네요. 하하.”

“그럼 어디로 가려고?”

“음… 일단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데, 서울 안 되면 경기도라도 구해 보려구요.”

분식집 아줌마가 안타까움과 섭섭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에이, 아줌마가 제 식비 아껴 주신 돈만 해도 얼만데요.”

“맨날 남는 거만 줬는데 뭐.”

“아줌마 떡볶이는 3일이 지나도 맛있을걸요? 제가 꼭 성공해서 아줌마한테 은혜 갚으러 올게요. 그리고 아줌마가 법적인 도움 필요하시면 수임료 무조건! 공짜로 해드립니다.”

해별이 잔망을 떨었다.

‘햇살 분식’이라는 작은 가게의 아줌마는, 해별을 이날까지 버티게 해준 일등 공신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이래서 이 변호사 며느리 삼고 싶다지.”

“아들 있다고 하셨잖아요. 소개해 주세용. 아줌마 닮았으면 인물은 보장됐을 거 같은데.”

“인물 좋지.”

아들의 얘기에 분식집 아줌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있다곤 들었지만, 정작 아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짓던 아줌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봉투를 챙겨 나왔다.

“이거, 가져가서 먹어.”

“에이. 얻어먹으려고 도와드린 거 아닌데.”

“알지. 내 자식 같아서 그래.”

“그럼 염치없지만 잘 먹을게요, 아줌마.”

*

“헐? 보증금 3천?”

해별은 떡볶이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다른 사무실을 구하는 것도, 기업이나 로펌에 취업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대신, 별산제 사무실이라도 알아보려고 했더니 보증금이 만만치 않았다.

(*별산제 사무실: 여러 변호사가 사무실을 나눠서 쓰는 것. 다 같이 법무법인을 만들거나, 개개인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냥 방도 빼고 본가로 들어갈까….”

그녀가 우울한 생각에 빠졌을 때, 믿기지 않는 글이 보였다.

“이… 금액이 진짜야?”

*

“룰루루.”

“저기요오….”

“아, 깜짝이야!”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문을 열던 민준이, 어디선가 튀어나온 해별을 보고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아, 죄송해요. 별산제 사무실 쓸 사람 구한다고 해서 연락드렸는데….”

“약속 시간을 잡았었나요?”

“아니요. 마음이 급해서 지금 왔어요.”

민준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8시가 안 된 시간, 대체 이 여자는 몇 시부터 나와서 기다렸단 말인가.

“일단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아직 변호사님 오시려면 멀었으니까.”

“감사합니다!”

해별은 맑은 얼굴로 민준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무실을 확인한 해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저기요. 혹시 인터넷에 올리신 글, 잘못 올리신 거 아니에요?”

“네? 아아. 정확히 올린 겁니다.”

“이렇게 좋은데요?”

“참고로 이쪽, 제일 넓은 방이 강 변호사님 사무실이에요.”

법률 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민준의 사무공간 겸 로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양옆으론, 변호사 사무실로 쓰는 방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싸요?”

혹시 사람이라도 죽었나.

긴장하는 해별에게 민준은 녹차를 건넸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하하.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우리 변호사님 만나서 들으세요.”

민준은 자세한 설명을 아꼈다.

빌붙는 친구 때문에 사무실을 내놨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 않은가.

“변호사님, 법원 들렀다 오실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당연하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아, 네. 그럼 이 방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여기가 인터넷에 올렸던 사무실이요.”

민준은 해별이 쓰게 될지 모를 방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럼 저는 제 업무가 있어서.”

“네, 네. 저, 신경 쓰지 마세요!”

민준이 방을 나간 뒤, 해별은 사무실을 한 번 더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아직 의심은 거둘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저렴한 거란 말인가.

[나 사무실 왔거든? 혹시 세 시간 뒤에 답장 없으면 말한 대로 신고 좀 해줘!]

혹시 몰라서 친구에게 당부의 문자도 보냈다.

수상할 만큼 저렴한 비용에 인신매매나 범죄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강도한 법률 사무소… 강도한, 강도한.”

해별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을 중얼거렸다.

“아,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결국, 기억하는 걸 포기한 그녀는, 언제 올지 모르는 사무실 주인을 기다리며 책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