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나른한 봄날의 늦은 오후였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만들어진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남자의 환한 웃음을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해맑은 웃음이 아름다운 그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멋진 외모와 섬세한 감수성으로 나의 남자 친구 역할을 7개월 동안 참으로 잘해 온 사람이었다.'나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원피스 치맛자락을 의미 없이 매만졌다. 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내게 내미는 장미꽃 한 송이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예쁘네.󰡓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더 예뻐.󰡓'싱글싱글 웃으며 하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여자를 즐겁고 기쁘게 해줄 줄 아는 남자였다. '나는 의자에 앉아 웨이트리스에게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주문한 후 마냥 웃고만 있는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는 내게 청혼 따윌 한 것일까 하고.'󰡒생각해 봤어?󰡓'그가 단정한 얼굴에 기대감을 잔뜩 품고 물어왔다. '그가 청혼한 것은 정확히 이틀 전이었고, 나는 뻔히 대답을 알면서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었다. 그 자리에서 대뜸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의 환한 웃음 때문이었다. 때 묻지 않고 순수한 그의 모습을 그냥 일그러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이틀이란 시간의 유예를 둔 것이었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아직 그를 내 인생 밖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일단 질문부터 했다. 내 질문에 그는 단박 고개부터 휘휘 저었다. 조금도 이르지 않다면서. '그리고 말했다. 그가 나를 처음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그는 내가 그의 신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고, 자신과 나는 아주 행복한 커플이 될 거라고 말이다. '……어리구나.'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있는 집에서 귀하게만 자라온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그는 내가 거절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네가 졸업도 하기 전에 너랑 결혼해서 비엔나로 가자는 건 좀 무리지 않을까? 너는 2년 후 졸업하고 비엔나로 가서 네 음악 공부를 계속 한다지만, 나는 거기서 뭘 하지?󰡓'아직도 그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은 나는, 이제 현실적인 쪽에서 접근해 갔다. 이 청혼이 얼마나 어이없고 무모한 것인지에 대해서.'󰡒너도 공부하면 되잖아?󰡓'󰡒무슨 공부?󰡓'󰡒너도 피아노 좀 쳤다고 했었잖아?󰡓'󰡒초등학교 다닐 때. 장난하니?󰡓'그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내 말에 그제야 좀 긴장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희망하는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입매가 팽팽하게 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