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뿌린다. 속에서 반짝이는 소형전구를 촛불이라고 생각하면 중세시대 서양의 성에 왔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이미테이션. 모조품. 아주 비싼 보석을 가진 사람들은 진짜를 금고에 넣어둔 채, 웬만하면 이미테이션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진짜는 바로 늘 쓰는 그 이미테이션이 아닐까? '테이블 위에 은제식기 대신 놓인 스테인리스 설탕통과 크림 통, 도자기처럼 보이는 유리 접시, 그리고 진짜처럼 보이는 조화 꽃꽂이. 은영은 진짜와 가짜가 어떻게 구분될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자리에서 저 물건들은 진짜로 이용되고 있다. 아무도 저것들을 가짜라고 생각하며 보지 않는다. 진짜는 아니라도 필요하니까 당당히 존재하는 이미테이션. 생각해보면 자신도 이미테이션이다. 초대받고 상류사회 파티에 섞여든 중산층. 속이기 위해 신분을 위장한 가짜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도 이 자리에 존재할 자격이 있다.''“그랬는데, 글쎄, 그 남자 뒤에 오빠가 나타나는 거예요! 목덜미를 붙잡더니 얼굴에 한 방!”'왁자하니 웃음이 터졌다. 연한 회색빛 정장을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주먹 휘두르는 시늉을 하니 누가 봐도 정말로 귀엽고 매혹적이다. 흑백이 뚜렷한 눈은 반짝이고, 한 듯 만 듯 화장한 부드러운 뺨에는 가벼운 홍조가 드리워지고, 연분홍빛 루주를 먹인 입술은 연신 맑고 명랑하게 또는 우아하고 상냥하게 여성스러운 음성을 흘려낸다. 흔히 말하는 요조숙녀 타입이지만 쾌활하고 그늘이 없는 순수함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원하는 여자. 모든 사람이 그녀를 본다.'은영은 진짜란 저런 여자를 말한다고 생각했다. 혈통과 재산, 지성과 유머감각, 아름다운 용모와 여성적인 곡선의 완벽함, 이 화려한 자리에서 굳이 발돋움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품격. 어느 자리에 있어도 무슨 무슨 영양으로 불리는 아가씨다. 필요에 의해 불려나온 자신과는 다르다.'“아페리티프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애써 구겨 넣은 식사예절 지식을 뒤적거려 보았다. 아페리티프는 식사 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이다. 양식에서 술이라면 포도주. 또는 와인.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있어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레드 와인. 뭐가 좋을까요?”'웨이터가 몇 가지 상표를 읊어댔다. 어떤 와인이 옷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느냐고 물었으면 좋겠는데 가까스로 참았다. 그냥 자주 듣던 이름을 댔더니 얼마 후 앞에 튤립 모양의 잔이 놓이고 루비처럼 붉은 와인이 담겼다. 기왕 받았으니 맛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조금 넘겼는데, 비싼 데라 그런지 쌉쌀한 감칠맛이 분명 마실 만했다. '은영은 아쉬움을 삼키면서 잔을 적당한 자리에 놓고 필요도 없는 후춧가루 병을 집느라 팔을 뻗었다. 그러면서 와인 잔을 슬쩍 밀었다. 반쯤 남은 루비 빛깔의 액체가 남실거리다가, 끝내 잔이 넘어지자 새하얀 테이블 보 위로 쫙 펼쳐지며 달려갔다. 냅킨을 올리지 않은 연회색 치마를 향해서. 세팅을 미처 하지 않아 장애물도 별로 없는 테이블 위를 거침없이 넘어가 은영에게서 한 자리 건너 앉은 목표물을 덮쳤다.'“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