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순간의 감정, 혹은 착각이다. 

영원하지도, 끝내 지키지도 못할 감정에 인생을 올인하는 것은 어리석다. 

날을 세우며 온몸으로 경멸을 보내는 여자가 귀엽기만 하다? 

발끈하는 모습은 왜 이렇게 섹시한가! 

“못마땅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네 할 일을 대신 해 주어서 편하니까 못마땅해도 감수하겠다?”

주리의 얼굴에 더욱 짙은 낭패감이 스치는 것을 확인한 순진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한 번 더 주리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래.”

“정말 그 이유만 있는 거야?”

계단을 중간쯤 내려온 주리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왔다. 이 순간을 모면하려는 속셈이 보였다. 순진은 계단 입구를 막아서며 주리를 올려다보았다. 밀당의 기술이고 뭐고 조급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서 제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만 충만했다. 

“그럼……, 뭐 또 다른 이유……라도 있어야 해?”

순진이 씨익 입가에 머금었던 미소를 지우고 타는 듯한 눈길로 주리의 입술을 더듬자 주리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잡아먹을 듯한 시선이 돌아오지 않는 건 분명 지금 주리에게 키스를 해도 무방하단 의미로 순진은 받아들였다. 

“송주리.”

순진은 주리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섰다. 주리의 얼굴과 거의 높이가 맞을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주리가 눈을 크게 뜨고 순진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올려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나랑 연애하자.”

주리가 목을 늘이며 꿀꺽 침을 삼키는 순간 순진은 주리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햇빛에 녹아 흐르던 말캉한 입술이 그의 입속으로 쏙 빨려 들어왔다.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나는 주리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지만 그의 입술과 혀가 맘껏 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순진은 한 계단 더 올라서서 주리의 허리를 꽉 감싸 안고 그동안 자신의 애를 태우던 주리를 벌주듯 폭풍과도 같은 키스를 퍼부어댔다.